책을 읽으며 나는 다시금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되었다. “나는 과연 예수님의 제자인가?” 책은 제자 삼는 사역의 원리를 “나를 본받으라”는 말씀에 두고 있었다. 제자는 단순히 배우는 자가 아니라, 본이 되어 또 다른 제자를 세우는 사람이다. 나는 또 다른 제자를 세우는 삶을 살아내고 있는지 돌아보았다. 그러나 늘 무언가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열매가 보이지 않는 사역은,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부르심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벧후 1:10)는 말씀은 제자대학 2학기를 다시 훈련받는 나에게 분명한 도전이었다. 더 이상은 부르심에 대해 의심하며 흔들릴 때가 아니었다. 진정한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훈련을 시작했음에도 긴장감없이 어중간한데 서 있었던 내 모습이 드러나면서, 하나님께서는 내 안에 다시 도전의 마음을 부어주셨다. 영적 성장의 초점은 언제나 ‘나의 변화’에 있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로드십에 대한 부분을 읽으며 나는 내 안에 교만한 모습이 많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교만은 결국 순종하지 못하는 태도로 이어졌고, 내 영적 성장과 변화를 가로막고 있었다. 나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것이 진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으며, 셀리더로서의 삶과 비전임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알고 있다’는 사실을 핑계삼아 실제 없는 삶에서 순종하지 못한채 뒤로 물러서는 나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나는 내 삶에 큰 욕심이 없다고 자주 말해왔다. 학벌도, 재력도, 명예에 대한 욕심도 없으니 내 삶은 이미 하나님께 맡겨드린 것이라 착각했다. 그러나 진정한 로드십은 욕심의 크기와는 상관이 없었다. 내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절대적 주권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제자의 모습이며 로드십이었다. 결국 나는 여전히 내 고집과 애착을 내려놓지 못한 채, 내가 주인 된 삶을 살고 있었다.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니 작은 것부터 순종하지 못한 내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여전히 수레바퀴의 삶을 습관으로 이어가지 못하는 어려움 속에 있었다. 큐티하면 은혜가 있고, 기도와 전도 가운데 기쁨이 있는데도 왜 생활의 자리에서 꾸준히이어지지 못하는가? 돌아보니 나
는 수레바퀴의 삶을 단순히 은혜를 얻기 위한 행위로만 여겨왔던 것이다. 그래서 하면 좋고 안 하면 어쩔 수 없다는 태도로 타협해왔다. 그러나 책은 분명히 말했다. “수레바퀴의 삶은 단순한 루틴이 아니라 매일의 순종훈련이다.” 결국 영적 습관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느냐, 불순종하느냐의 문제였다.
로마서 5장 말씀,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 5:19).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설명하는 말씀이지만, 동시에 ‘나 한사람의 순종을 통해 수많은 제자가 세워질 수 있다’는 말씀으로 다가왔다. 결국 제자의 길은 ‘순종’위에 세워져야 하며, 순종하는 사람에게 수많은 열매가 맺힌다는 것을 깨닫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순종의 길을 걸으라 말씀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은 마지막으로 ‘순종’을 넘어선 ‘충성’을 강조했다. 이해되지 않아도 순종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변함없이 따르는 삶, 그리고 끝내는 죽기까지 충성하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분명히 알게 되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이 없는 것처럼, 순종하지 않는 제자는 제자가 아니다. 제자의 길은 단순히 알고 있는데 머무르지않고, 끝까지 순종하는 삶으로 드러나야 한다. 그리고 그 순종은 반드시 열매로 이어진다. 충성하는 사람의 삶에는 열매가 없을 수 없다.
사역의 성공은, 하나님 앞에서 끝까지 충성하는 것이다. 끝까지 순종하고 충성하는 사람이야 말로 제자 삼는 세계비전을 이루어 갈 수 있다. 나에게 주신 자리에서 죽기까지 순종하며, 예일교회에 뼈를 묻고 그 비전을 이루는 것이 내가 달려갈 길임을 고백한다.
끝으로 평생토록 충성된 제자로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비전 안에서 순종과 충성의 열매를 맺으며, 또 다른 제자를 세우고 또 다른 교회를 세우는 그 길에 쓰임받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