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올해로 뱃속에서부터 시작해 34년간을 신앙인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살았습니다. 때로는 그 이름표를 숨기기도 하고, 또 때로는 떼버리기도하며 지냈습니다. 어려서는 제 의지와 상관없이 신앙인이 되었고, 커서는 부모님 눈치를 보며 교회출석을 했습니다. 그래도 그 안에서 행복했고 학교친구들보다 교회 친구들이 좋아 즐거웠습니다. 청년이 되어 주일학교 초등부를 책임지는 자리에 있으면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좋았고, 한 달 한 달 초등부 운영계획을 짜며 기도하는 시간이 기뻤습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다보니 조금씩 피곤하다는 이유로 꾀가 나기 시작하고 어느 새, 제게는 주님 안에서의 봉사보다 사회에서의 일이 즐거움이며, 천국의 면류관보다 회사 내에서의 인사고과가 더 중요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친구들보다 늦게 대학에 들어가 공부하면서 교회와는 거의 담을 쌓기 시작했고 교회 출석은 월례행사 정도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내 옆에서 기도해 주던 값진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땐 그 소중함도 제대로 깨닫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미 내 맘에 하나님과의 담을 쌓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졸업 후 다시 일을 하면서 교회 출석을 하게 되었지만, 믿음에 대한 기쁨도 없고, 즐거움도 없고, 확신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결혼 후 아이를 낳고 어린 생명을 데리고 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의자에 고이 눕혀 논 아이가 어찌 그리도 이쁘고 사랑스럽던지요. 다른 사람 눈에는 별로였을지 몰라도 제 눈에는 세상 그 어떤 아이보다 사랑스럽고 최고로 예뻐 보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제 머리에 떠 오르는 것이 이렇게 사랑스러운 자식을 하나님은 널 위해 보내셨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갑자기 눈 앞에 흐려지고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는데 행여 다른 사람이 볼까 겨우 참아가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를 보며 제 믿음이 회복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제겐 열정이 없었고, 마지못해 끌려다니는 믿음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양육반을 필히 거쳐야 한다는 반 강요, 반 협박에 못 이겨 3기 신청서를 제출하게 되었습니다. 강요와 협밥! 좀 눈에 거슬리는 표현일 수도 있지만 양육을 받기 전 제 마음의 솔직한 표현입니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교회에서 지내기가 피곤해지고, 귀찮아지니까 눈 딱 감고 한번 참아보자. 하고 시작한 양육반은 내게 있어 채찍과도 같았습니다. 지난 시간을 헛되게 소비한 자에 대한 질책의 채찍질이며, 앞으로 더 분발해서 나아가라는 격려의 채찍질이고, 내 비딱한 모습을 다시 바라보게끔 하는 각성의 채찍질이기도 했습니다. 선배들의 간증문을 보면서 정말 이렇게 좋았어? 진짜 은혜스럽디? 제출해야하니 얼마든지 은혜받은 척 쓸 수 있지 뭐.. 하는 마음도 들었던 것이 사살이였고 간증문은 화장실 갈 때나 한 번씩 들고 들어가 읽는 읽을거리일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제 입에서 일단 한 번 받아봐.. 고기 맛도 먹어본 사람이 안다고 은혜도 받아본 사람이 알고 말씀도 들어본 사람이 알고 훈련도 받아본 사람이 알아.. 하는 말이 나옵니다.

양육반을 통해 도대체 무엇을 배웠는가? 무엇이 남았는가? 궁금해 하시는 분들도 계실겁니다. 제 경우엔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에 대한 기대와 비전이 남았고, 하나님 앞에 온전히 내려 놓으려 애쓰는 마음이 남았고, 더 큰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픈 자세가 남았고, 새롭게 발견한 천국의 가치가 남았습니다. 더 많이 주셨음에도 제대로 알아내지 못하는 우둔한 우리는 보며 하나님은 안타까워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것아, 내가 이것도 주지 않았니? 또 이런 것도 주었잖아.. 하지만 질책하며 탓하시기보다는 그래 네가 언젠가 내 이런 뜻을 알겠지.. 하시며 기다리시고 또 기회를 주시고 계실 겁니다.

양육기간동안 제가 받았던 은혜 중 하나는 오랜 시간에 걸쳐 기도하던 십일조에 대한 응답이었습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생활비가 빠듯하다보니 이리 미루고, 저리 핑계대고, 내 자신을 위로하며 지금껏 버텨왔습니다. 내가 십일조를 못하는 건 어찌보면 더 많이 안 주시기 때문이라는 억지 계산을 하면서 지냈습니다. 50만원만 더 주시면 할 수 있는데, 100만원만 더 주시면 할 수 있는데.. 라는 억지고집을 부리고 있었던 겁니다. 그런 제게 양육기간동안 말씀으로 보여주시고, 기도 중 머리에 떠오르게 하시면서 저의 영적 양심을 마구 찌르시기 시작하였습니다. 또한 한 자매의 본받고 싶은 신앙인의 모습이라는 말에 더 괴로웠습니다.

월급을 받고 첫 주일 아침에 하나님은 갑자기 제게 십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집요하게 찌르시던 그 분은 절묘한 시간에 저를 건드리신 겁니다. 월급을 받은 지 며칠 안되었으니 생활비가 없다고 다음 달로 미루기도 뭐하고, 또 평일도 아닌 주일 아침이니 며칠간의 말미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결단하라는 말씀이셨 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결정을 못 내리고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좌불안석이 되어 이래도 불안, 저래도 불안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안되겠다 싶어 친정엄마에게 상황을 얘기하니 첫 마음이 주님이 주신 마음이고 그 후에 드는 생각은 사탄이 주는 마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에고.. 내가 물어 볼 곳에다 물어봐야지.. 뻔한 답이 나올 걸 알면서 물었으니 죄책감만 더 커졌습니다. 11시는 다 되어가고 안되겠다 싶어 남편에게 지금 우리 생활이 이러한데 십일조를 어찌하면 좋겠냐고 물었습니다. 속으론 남편이 단호하게 “나중에 해! 지금은 힘든데 어떻게 하려고 그래!” 라고 대답해 주길 은근히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맥 빠지는 소리가 “네가 알아서 해..”였습니다. 그렇게 빈 십일조 봉투와 감사헌금 봉투를 가방에 넣고 마음만 무거운 채 교회에 나왔고 여전히 마음이 복잡해 마침, 아무도 없던 자모실에 혼자 들어가 헌금봉투를 앞에 두고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중에 제가 하면 안될까요? 지금은 너무 힘든데, 나중에 형편이 좀 나아지면 그 때 할래요.. 아니면 온전한 건 안되니까 생활비의 십일조만 하면 안될까요? 저 좀 봐주시면 안 되나요? 그렇게 하나님과 어리석은 타협을 보려고 했습니다. 그 와중에 하나님은 제게 온전한 것으로 드려라. 내가 너를 축복하는지 안하는지 어디 한 번 보렴.. 하고 말씀하시는 듯 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더 망설일 것도 없이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고, 그로 인해 마음의 평안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함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양육반은 저를 회복시켰습니다. 물론 아직도 더 깨어지고, 더 다듬어져야 합니다. 양육반을 마치고 그 다음단계는 더 힘들다고들 합니다. 양육반이 힘들다고 하는 우리를 보며 선배들은 아직 멀었어, 양육반은 힘든 것도 아니야라며 은근히 겁도 줍니다. 솔직히 걱정도 되고, 자신감도 없어지려고 하고, 이 정도 했으니 노력은 한 거니까 됐다며 만족도 하게 됩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제게 “이것아 밥상 차려놨더니 이제 겨우 밥 한 술 떠 먹고 됐다고 그러냐? 거기 놓인 반찬들도 먹어야지.. 밥 먹고 난 후 후식도 있는데 밥 한 술 떠 먹고 뒤로 물러날래?” 하십니다. 그래서 저는 그 밥상 한 번 깨끗하게 먹어 치워 볼 생각입니다. 내가 한 밥도 아니고, 내가 한 반찬도 아니지만, 날 위해 하나님이 차려주신 상인데 겨우 밥 한 술에 만족할 수는 없으니 말입니다. 히딩크 전 축구 국가대표 감독이 그랬다죠?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 저도 그렇습니다. 아직도 배가 고픕니다. 그래서 우리 동기들 모두 다같이 그 상을 받아, 주린 배를 채우길 원합니다.

아직 양육을 받지 못하신 분들.. 그 밥상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일단 한 번 드셔보시면 그 맛을 알게 될 겁니다. 그렇게 오기로 버티고, 지식으로 버티고, 자기 고집으로 버티다 보면 어느새 내 영혼은 아사직전까지 갈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예일 교회 모든 성도들과 이웃들이 모두 영적으로 배부른 이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 갑자기 떠오른 생각인데 우리 작은 사모님이자 목자이신 분을 보니 참 행복한 사람이구나 싶습니다. 영적으로도 배부르고 육적으로도 배부르고 아마도 우리 교회에서 젤로 복 받은 사람인 듯 싶습니다.